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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직자 (The Church Offic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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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5-22 12:30 조회815회 댓글0건
일시 : 2022-05-22 본문 : 행 (Ac) 6:1-7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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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4Izy0lS6dg 

 

중직자 6:1-7
 

성경은 원죄의 원인을 사단으로 설명하고 있고 이 사단을 꺾을 답은 오직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근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미련하게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1:18) 우리는 그리스도와 사단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이 눈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고 답을 잡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음은 원죄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이 원죄에 머물러 있으면 자연적으로 죄를 강조하게 됩니다. 물론 죄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다 왔으니까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죄를 통과하여 사단을 근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잡고 내 생각의 수준이 죄에 머물러 있다면 자연적으로 행위가 기준이 되기 싶고 복음 안에 있으면서도 율법적 경향을 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처럼 원죄를 통과하여 사단에게까지 이르면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원인이 사단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더 집중하게 되고 사람들도 이해가 되고 용서도 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원죄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연 나의 죄나 행위가 더 큰 이슈가 됩니다. 사단이 원인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인 힘 입니다. 우리의 복음이 원죄를 통과하여 사단에게까지 도달하므로 영적인 전쟁이 되고 영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참 복음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1. 중직자

1) 오늘 본문은 중직자에 대한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중직자는 교회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장로님들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것이 없습니다. 교회 전체의 방향이 당회를 통하여 정해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장로님들 뿐 아니라 권사님 안수 집사님들도 교회 곳곳에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하여는 이런 분들의 도움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2) 물론 온 성도들이 다 중요하고 젖먹이 렘넌트들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앞으로 이들이 무엇이 될지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렘넌트들을 귀하게 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과 성경 전체를 볼 때 중직자는 3가지 방향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처럼 사도가 기도와 사역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중직자가 해야 할 일이고 사상입니다. 두번째는 중직자들도 밖에서 전도와 선교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 빌립과 스데반 같은 중직자들은 사도들 못지 않은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중직자들은 렘넌트 운동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세계복음화에는 목사 장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사님 안수 집사님들도 얼마든지 세계복음화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너무나 악한 세력들이 많고 세상에는 복음을 몰라 저주에 빠진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직자들이 성경에 시대적인 복음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과 같은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오바댜 같은 사람, 다니엘과 3친구와 에스더, 브리스길라 부부, 요게벳과 한나 같은 사람들 등등 우리가 보고 따라가야 할 중직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6) 위하여 중직자의 출발은 복음이어야 합니다. 남은 자의 조건은 언약이었습니다. 언약에 남지 않고 순례자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언약이 없는 순례자는 허공을 칠 뿐입니다. 정복자는 언약 가진 순례자의 결과 입니다.

7) 우리 중직자는 이 언약으로 3전무후무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나 개인 뿐 아니라 내가 섬기는 교회도 100년의 응답, 이것을 위하여 내가 할 헌신, 여기에 언약이 있는 자가 성경적 중직자 입니다.

8) 복음 누리는 자는 이것이 가능합니다. 복음이 살아 있는 교회도 이것이 항상 가능했습니다. 개인과 교회와 시대가 다 그랬습니다. 그 뒤에 항상 시대를 두고 준비된 중직자들이 있었습니다.

9) RT7명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 스스로 시대적인 RT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 뒤에는 항상 그 시대를 두고 준비된 중직자들이 다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버지를 하나님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눈에 아버지가 하나님의 종으로 보였던 것이며 이것은 다윗에게 굉장한 가슴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10)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의 결과 입니다. 요게벳의 기도와 결단의 결과가 모세 아닙니까. 예를 들면 한 두 사람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중직자들이 다 이런 전무후무한 100년의 응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렘넌트들과 청년들이 다 이런 중직자 되기를 바랍니다.

 

2. 237, 5000 종족

1) 출애굽 시대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나안만 가면 아무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에 참여한 모든 개인 인생의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약 가진 자의 특권이기도 했습니다. 가나안만 가면 아무것도 안 해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였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이상 한 것이었습니다.

2) 대신, 다른 좋은 것은 아무리 많이 해도 가나안을 가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이유는 가나안을 가지 않는 것 외는 없었습니다. 억지로라도 갔으면 그들은 시대적인 응답과 증거를 보았을 것입니다.

3) 문제는 지금도 이럴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 입니다. 지금도 그 원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일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 지금은 그때와 시대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정말로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할 일이 많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래 땅에서 할 일이 무엇이 있었냐. 그야말로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 않냐. 일리가 있어 보이는 말입니다.

5) 그런데 그 모든 일을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한다면 아무 할 일이 없었던 그때와 같아지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본래부터 포인트는 일의 종류가 많냐 적냐가 아니고 그 일을 무엇을 위하여 하는냐 였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한다면 그때와 지금은 꼭 같아집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신앙고백의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6) 성경에는 이에 대한 수 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사 속에도 많이 있고 우리와 함께 복음 운동을 하는 분들 속에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세계복음화를 향하여 뛰었는데 하나님이 내 인생에 이런 기적을 주셨다는 간증을 할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7) 237, 5000 종족, 세계복음화의 다른 표현으로 우리에게 와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 인생에 무엇인가. 세계복음화라는 단어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무슨 소린지 전혀 관계가 없는 소리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인생의 답이다.

8) 가나안을 가는 것은 출애굽에 참여한 모든 개개인들의 인생의 답이었습니다. 잘 가고 못 가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느냐 안 가느냐가 문제였지 그 외의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가도 그들이 갔으면 그들은 들어 갔을 것이고 많은 증거를 보았을 것입니다.

9) 지난 주 말씀처럼 억지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거기서 환영하고 너무나 수고하였다고 칭찬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세우지 않은 아름다운 성읍으로, 그들이 채우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으로, 그들이 아무도 판 적이 없는 그 귀한 우물로, 그들이 아무도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으로, 이 모든 것으로 거기서 배불리 먹도록 .

10) 이것이 전무후무한 응답입니다. 이것이 싸우지 않고 얻는 응답이요 되어지는 인생입니다. 정복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정복.

11) 우리가 영원한 복음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고 이것을 전하기 위하여 땅 끝까지 가면 이런 응답과 축복이 우리와 우리 후대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냥 간단하게 표현하여 100년의 응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응답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