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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것 (The Thing We Should not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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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13 05:39 조회1,360회 댓글0건
일시 : 2017-11-12 본문 : 시(Ps) 137:1-9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잊지 말아야 할 것 (시편 137:1-9)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지어진 시이다.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그 때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것이 오늘의 포인트겠다.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는 약속을 이미 받았는데 그것을 버려서 그렇다. 우린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

 

사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안 될 수밖에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아야 되는데 그걸 안 하는 것. 이걸 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냥 무시하며 사는 것. 이렇게 되면 문제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이런 많은 것들이 뿌리 내리고 있는데 알다시피 전부 창 3장에서 온 것들이다. 이것 고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리스도 언약이 100% 마음 속에 담긴다면 응답은 틀림없는 사실이 된다.

 

왜 우리에게 문제가 왔는가? 원죄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왜 문제가 해결 안 되는가?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 하나로 끝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이것 하나로 끝낼 수 있다는 설명이 성경이다.

 

오늘 말씀은 거꾸로 설명했다. 이 언약을 끝까지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셨다. 그토록 언약 잡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은 끝까지 버렸다. 그래서 본문처럼 되고 만 것이다.

 

인생은 간단하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 그래서 내 영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응답 받고 승리하는 것, 여기에 대한 증인으로서 땅 끝까지 가다가 부르시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이게 최고의 인생이다. 그런데 사단은 계속해서 세상 생각을 파고 들게 하고 결국 안 되게 한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전반적으로 우리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본다면 너무 간단하다. 예수를 알라.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고 그것의 증인되라. 이것으로 네 인생을 끝내라. 다른곳으로 눈 돌리지 말라!” 이것이 우리 인생의 법칙이다. 내 인생사는 방법, 자녀양육의 방법도 다 이 방향이여야 한다. 안 그러면 사단에게 걸려들고 만다.

 

오늘 본문 보면 그들 속에는 잘못된 각인이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피로 승리했어야 했는데 잘못 각인된 것들을 따라가서 결국 무너졌다. 그러나 이 언약을 회복했을 때 다시 그들 인생 전체를 일으켜주셨다. 언제든지 다시 언약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시편 137:1-6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힘과 능력을 뜻하는 것이 오른손이다. ,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바보 되어 죽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 맺힌 노래이다. 많이 후회하고 회개 했을 것이다. 그 때 우리가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그토록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포로로 잡혀가서 설움을 당하는 것도 억울한 상황에서 바벨론을 향해 기쁨의 노래까지 불러주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힘이들고 억울했을까? 참 많이 울었겠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루살렘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서 끝나버릴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제는 그 어떤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내가 죽겠다! 하나님 나 죽어도 괜찮아요. 또 다시 그런 실수를 한다면 죽여주세요!”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런 고백을 했을까? 능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요한 게 있다. 이 말씀을 기록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으셨던 한마디는 무엇일까? 왜 이렇게 되었는가?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앞으로 큰 나라가 처들어와서 너희를 칠 것이니 지금이라도 빨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계속 알렸다. 그런데 이 말씀의 경고를 받지 않고 왕들조차도 계속 무시했다.

 

예례미아 선지자는 늘 울고 다녔다고 한다. 자기는 보이는데 백성들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말이다. 분명히 그날이 올 것인데 왜 듣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말씀이 도무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예례미야 애가서도 기록한 바 있다. 말씀을 전하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구덩이를 파서 가두었는데도 그는 말씀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는 톱으로 잘림을 당하며 순교했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바벨론은 망했다. 마지막 왕이 눈알이 뽑혔고 그가 보는 앞에서 왕자 5명의 목이 날아갔고 쇠고랑을 묶어 수천리길을 끌려갔다.

 

이렇게 해서 완전히 망해버린 것이다. 자기들을 포로 만든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해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냥 포로 되어있는 것도 억울한데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물론 그 이후에 그들이 돌아왔을 때 다 회복시켜주셨지만 말이다. 결국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셨다. 성전을 짓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만나주기로 했다. 예루살렘을 보호해야 하니 성벽도 쌓게 하셨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어려움 일지라도 이런 일이 있게 해서 되겠냐는 말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영적인 요소들이 자리를 딱 잡고 있는데 이것을 꺾어야 한다. 그 답이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 숭배의 문을 열어준 이유가 있다. 사단에게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육신적 욕구를 위해서 그랬다. 항상 신전에는 음녀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아서 쫓아가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안 돌아서는 것이다. 또한 돈이나 권력이 너무 좋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면 이것을 못한다. 왕이 권력을 좀 휘두르고 해야 재밌지 않겠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이 되면 자기는 졸병이 되는 것 같으니 싫은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안 믿는 것.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신 것이다. 돌아오라고! 언젠가는 사단에게 걸려드니 돌아오라고! 우리 안에도 이런 것들이 많이 깔려 있다. 언젠가는 승리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스도 누림으로 이것들과 영적 전쟁이 계속 되어야 한다.

 

사실 이런 것 없다면 우리에게 고난이 올 이유가 없다. 우리 고난의 이유 저변의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거기에는 영적인 것들이 들어있다. 양심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내 개인의 영적 문제가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지 말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상 숭배 하면 안 된다! 음란 하면 안 된다! 욕심 부리면 안 된다! 하는 윤리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사단에게 걸려 재앙을 만난다는 메시지이다. 너는 이스라엘처럼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눈알이 뽑히고 포로가 되는 것도 억울한데 그들을 위해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어야 한다니?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며 기다려야 하다니?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를 보낸 것 아니냐! 그리스도가 너에게 뭐냐?” 하는 것이다.

 

우린 절대 해결하지 못하는 영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우리를 저주에서 건진 유일한 하나님의 언약이다. 그를 믿으면 저주에서 나오게 된다. 우리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 저주에서 해방!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자이다. 영적 상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있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그리스도라면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을 전적인 타락이라고 부른다. 바늘구멍만큼도 틈이 없는 완벽한 타락이다. 무슨 방법으로라도 절대 나오지 못하는 것에 걸려들었다. 운명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그리스도를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잊지 말았어야했다. 이 언약을 떠나지 않았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양의 피 언약 안에서 살았어야 했다. 왕 한명이라도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선지자를 죽였다. 우리는 이러면 안 된다. 하나님 자녀가 이러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만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