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본문 바로가기
HOME > 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주일강단메시지

은혜 언약 (The Covenant of Grace)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5-12 15:20 조회402회 댓글0건
일시 : 2024-05-12 본문 : 왕하(2Ki) 25:1-7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영상시청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Watch the video (click the link below) 

 https://youtu.be/TQaL0tax-zU

 

은혜 언약 왕하25:1-7

 

본래 에덴 동산에서는 인간이 언약만 지키면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이 깨어지므로 저주가 임하고 지옥으로 가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언약만 지키면 된다는 원리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 약속의 피 안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구원도 응답도 사단의 머리를 깨는 승리와 정복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이 언약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이 언약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언약이 깨어진 그때 이후로 언약이 없어 저주를 받게 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사람을 살려 주기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자들을 전부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각인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언약 안에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지금 임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은혜 언약

1) 오늘 본문은 유다마저 바벨론에 멸망하는 너무나 비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왕의 아들들은 왕이 보는 앞에서 다 죽고 자신은 눈이 뽑히고 놋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7)

2) 그 전 왕 여호야긴이 우상을 숭배하다 바벨론으로 끌려 간 것을 보고도 (왕하24:15) 우상 숭배를 중단하지 않고 말씀을 거역하므로 오늘과 같은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후 바벨론은 성전도 파괴하고 그 안에 금으로 만든 것 은으로 만든 것은 모두 다 가져갔으며 뜯어 간 놋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간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습니다.

3)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이런 엄청난 심판을 행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잡아간 여호야긴 왕을 다른 왕들과 달리 특별한 대우를 받게 해 주신 것입니다 ( 25:27 -28)

4) 그래서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정리하기를 원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너무나 비참하게 죄의 심판을 하신 하나님이셨지만 여전히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5) 신학에서는 에덴 동산의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을 행동으로 지켜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후에 하나님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이 은혜로 된 언약입니다.

6) 우리가 행위로 지키지 않아도 구원이 깨어지지 않는 그런 언약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시 죄를 지어도 그 구원이 깨어지지 않는 그런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냥 믿는 순간에 구원이 완성이 되는 그런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5:24) 그리고 다시 되돌아 가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7) 저주의 원인은 죄입니다. 죄가 없으면 저주는 영원히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죄가 있어도 저주가 없는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합니다.

8)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31:33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34절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구약 시대에도 이미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만일 이런 은혜가 없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믿는 순간에 구원이 완성되지 않고 그 이후에 짓는 우리의 죄에 의하여 그 구원이 깨어질 수도 있다면 누가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러면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헛일을 하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우리의 어떤 죄도 우리의 구원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구원 이후의 죄가 완성된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구원을 위하여는 죄를 회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받은 그 구원은 회개하지 않아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11) 단지 죄를 자꾸 지으면 우리가 감옥에서 죽어 천국을 갈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도 회개가 없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많은 갈등이 쌓일 것입니다. 그러면 많이 괴롭게 될 것입니다.

12)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의 자범죄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지 받은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입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관계 있는 회개는 처음 믿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회개를 말하고 그 이후 자범죄에 대한 회개는 받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13)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며 그래서 은혜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은혜 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다윗처럼 되고 히스기야처럼 되어서 본인이 축복을 받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이 증거되기를 원하셨습니다.

14)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멸망을 받은 모든 왕들과 나라에 빛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바벨론 당시에 히스기야 같은 언약의 왕이 있었다면 바벨론에 점령된 수 많은 나라의 빛이 되었을 것이고 그는 홀로 살아 남은 유일성의 응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왕이 없었습니다.

15)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하는 우리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2. 역사 의식

1) 지나간 역사를 보는 눈이 바르면 자신의 앞 날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역사 보는 눈이 하나님과 일치한다면 우리 인생 중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임할 것입니다.

2) 우리는 이 시대의 시대적인 하나님의 일을 두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시대적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는 이유는 성경이 그러하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성경대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본 말씀처럼 그들이 만일 가나안 땅을 들어 갔다면 광야에서 일어난 모든 시험이나 사건들은 그저 과거의 일로 끝났을 것입니다.

4)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시험들이 역전이 아니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하나님의 계획의 권세입니다.

5) 그 시대의 하나님의 계획은 그 시대 세계의 역사입니다. 그 시대의 흐름이고 그 시대의 축복의 길입니다. 모든 문제를 역전하고 뱀의 머리를 깨는 그 시대의 권세가 그 시대의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절대 계획이고 다른 말로 절대 축복 입니다. 하나님은 운명처럼 우리에게 시대적인 복음을 주셨고 시대적인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일로 보이는 눈이 역사의식입니다.

6) 바울 시대에는 세계의 역사가 바울을 따라 갔고 요셉 시대에는 요셉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하나님의 언약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회사 뿐 아니라 세상 역사에도 중심이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움직였습니다.

7) 루터와 그를 도운 중직자 한 명 그리고 May Flower 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그 시대의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시대적인 일들을 보면 압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기도 제목에도 이런 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 이 흐름을 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