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본문 바로가기
HOME > 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주일강단메시지

제단을 쌓았더라 (He Built an Altar)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20 14:49 조회2,292회 댓글0건
일시 : 2020-12-20 본문 : 창(Gen) 13:1-18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제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장 1-18절)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복음을 알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 곧 언약의 피는 인간의 인생 모든 것에 근본 답입니다. 이 복음을 누려 본 경험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인정하는 사실이고, 성경에는 이에 대한 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 복음 누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노력이 아닙니다. 인간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힘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곳에서 나옵니다. 사탄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관건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는가의 여부이며, 그것이 얼마나 깊은가에 모든 것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 복음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복음을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하여 깊이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깊은 영적 누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를 두고 우리가 간구의 기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근본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누림의 기도입니다. 이 누림의 기도가 평소에 되어 있는 자는 급하게 간구를 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도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이 누림은 인간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고, 이것이 인간 모든 문제를 해결 한다고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기도가 답이 아니고, 기도로 복음을 누리는 것이 답입니다. 복음을 누리는 기도의 사람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명에 관련된 약속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언약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기도의 핵심입니다. 속이 없는 찐빵을 무슨 맛으로 먹겠습니까! 그래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찐빵에는 반드시 속이 있어야 진짜가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런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제단을 쌓았더라

1)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 때 언약의 피로 예배를 드리고, 그 언약 안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이 단을 2번 쌓은 것으로 나옵니다.

2) 제단을 쌓는 것은 신자에게는 절대적 행위입니다. 누구든지 믿는 자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것을 함께 교회에서 하기도 하고, 개인이 집에서 하기도 합니다. 둘 다 당연히 해야 하고, 지속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애굽에서 굉장한 하나님의 역사를 본 아브라함은 믿음의 결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4) 그 이후의 아브라함의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은 많은 응답을 받아 거부가 되고, 전쟁에서 왕들을 꺾고, 멜기세덱 곧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주위의 왕과 군대장관이 와서 조약을 맺자고 무릎을 꿇기도 하여 아주 많은 응답을 누린 증인이 되었습니다. 

5)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는데 아들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많은 갈등과 낙심과 불신앙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일에만은 항상 순종이었습니다. 

6) 이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갈등과 불신앙의 때에도 언약을 고백하고, 잡는 일은 중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인생에도 중대한 답이 됩니다.

7) 그리하여 그는 100세에 드디어 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도 안되는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인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8)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이야기를 끝으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종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이후에 후처를 통하여 아들 6명을 더 낳고, 175세까지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을 끝으로 아브라함의 모든 이야기를 끝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시고 싶으셨던 메시지는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수양,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실 말씀을 다 하셨기 때문에 그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끝내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언약이 되면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볼 것입니다.

 

2. 롯이 망한 이유

1) 롯은 아브라함과 동시대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인생과는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그 인생이 영적인 것에 걸려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이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책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창17장에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말씀하실 때에 다시 아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상당한 불신앙을 직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창17:17은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었다고 했고, 18절에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3) 그러나 이런 불신앙 속에서도 그 날 명령하셨던 할례를 행하는 일은 23절을 보면 그 날에 바로 행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적어도 불신앙은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4) 그러나 롯의 인생에는 언약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언약으로 구원을 받은 의인입니다(벧후2:7). 그러나 언약을 고백하고, 잡고, 누리는 실제적 행위를 했다는 기록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5) 아브라함은 불신앙 중에서도 이 단을 쌓은 행위를 중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차이가 두 사람 사이의 인생을 갈라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의 조상으로 승리하였고, 롯은 구원을 받았으나 육신적인 면에서는 온 가족이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6) 성공을 할 것이냐의 여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관은 언약을 믿고, 고백 하고, 잡고, 누리고, 전하는 이것뿐입니다. 언약이 답이니까요.

7) 우리는 믿음이 없어도 이 고백은 해야 합니다. 잘 안 되고, 은혜가 되지 않아도 이 행위는 무조건 지속을 해야 합니다. 기도도 이 언약이 들어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언약을 중시하지 않는 기도도 기도입니다. 그러나 속이 빠진 찐빵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이 핵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8) 우리가 이것을 지속하면 우리 인생이 아브라함처럼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우리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 분명한 차이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9) 내가 시간을 정하고, 이 언약을 확실하게 하나님과 나와 사탄 앞에서 고백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 모든 것의 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기도하는 마6:33이 그것입니다.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