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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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4-02 04:36 조회1,798회 댓글0건본문
부활(고린도전서 15:12-26)
▶ 오늘도 귀중한 말씀으로 우릴 살려주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부활이다. 말씀 따라 다시 살아나는 응답을 받아라. 인간은 만물 중에 가장 똑똑하지만 어떤 때는 최고로 바보이기도 하다. 짐승은 죽은 후에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지옥 같은 곳에 갈 일이 없지만 인간은 다르다. 살아있을 때는 동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똑똑하지만 만약 구원 없이 죽으면 영원한 지옥불이다. 그래서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것이다.
▶ 얼마 전에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Stephen Hawking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한 분이고 우주 속에 끊임없는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며 연구했던 사람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 불러지기도 했다. 루게릭병에 걸려서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70세를 넘겼고 그런 몸으로 결혼과 재혼, 이혼도 하였다. 불굴의 투지로 낙심하고 있는 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호킹은 ‘우주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원숭이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일 뿐이라고 했다. 진화론과 무신론자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리를 깊이 연구하다가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천재는 바보보다 못한 것이다.
▶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니 최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언제 판명이 나는가? 죽어보면 안다. 살아 있을 동안 이 분은 수많은 머리 나쁜 자들에게 추앙을 받았고 불구의 몸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영감도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바보들을 이끌고 함께 지옥에 들어갔다. 심판대에 가면 더 큰 불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미쳐 몰랐을 것이다.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는 이 분이 우주론으로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차라리 다른 분야를 연구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무리 우주에 대해 연구했다 한들 자기의 운명,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쯤에야 알았을 것이다. ‘이게 아니구나!’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차라리 오병이어같은 걸 평생 연구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어떻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5마리를 가지고 5000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을까 하는 연구... 이런 천재들에게는 굉장한 프로젝트고 도전해볼만한 것이었다. 평생을 물고 늘어지면서 연구할만한 제목인 것이다.
▶ 예수님이 한번은 저 멀리 군대귀신 들린 자에게 조용히 이야기 했다. 나오라고. 귀신수가 약 2000정도 되었는지 돼지 2000마리가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어 익사했다. 이런 것에 대한 연구는 우주에 대한 연구보다 훨씬 가치 있을텐데 말이다. 운명이 뭔지, 인간이 뭔지 연구했다면 적어도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는 이론을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분의 연구를 보면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구와 같은 궤도에 행성이 약 500개 정도 있는데, 태양과 가까이 가면 뜨거워서 안 되고 분명 적당한 위치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명체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고 했던걸까?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게 아니고 우주와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했는데 결국 죽고 만 것이다. 살아날 수가 없다. 지옥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곳인데 이 분의 연구가 그런 곳에서 빛을 발 하겠는가? 자기 딴에는 굉장히 콧대가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참 귀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 되어주셔서 소망 있게 해주신 것이 참 감사하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진리이다. 그에게만 생명이 있다.
1. 우리의 소망, 부활
▶ 이 부활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소망이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떠나 있다. 그리고 죄인, 사단의 종이 되어 운명에 잡혔다.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공포심이 있는 것이다. 지옥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이 그렇게 무섭다고 한다. 너무나 두렵고 캄캄한 곳이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가 뜨거운 불에 너무 목이 타서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무 뜨거워서 미칠 지경인데 아무리 찾아도 물 한방울이 없는 것이다. 그게 지옥이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보면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우릴 거기서 건져 주신 것이 부활인 것이다. 누구든지 예외는 없다. 절대로 영원한 처절함에서 나올 수 없는데 우릴 건져주신 것이다. “너는 여기서 나올 것이다!” 라는 약속이 부활이다. 그렇다면 부활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린도전서 15:19-20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 된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말이다. 때로 급할 때 그리스도 부르면 그 자리에 즉시 역사하신다. 얼마 전에 이호주 장로님의 친구분에 대해 언급하나 적이 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까만 마차를 가지고 4명이 태우러 왔단다. 저승사자가 태우러 오면 우린 꼼짝 못하는 것이다. 그 마차에 들어가는 중에 목이 문에 걸렸는데 그 때 갑자기 그리스도가 생각났다고 한다. 그래서 순간 그리스도 이름 불렀는데 마차와 그 4명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 선포해서 귀신이 떠나간 사람이 한 두명이겠는가? 악몽에 시달리다가 그리스도 믿고 악몽이 끝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삶에 간증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이다. 살아계신 주, 우리의 영원한 소망!
고린도전서 15:6-8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 우린 이렇게 개인적 체험과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 부활을 믿는다. 부활에 대한 신앙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실히 있다면 이 땅의 모든 것을 완전히 이길 수 있다! 가장 강력한 능력이자 권세인 것이다. 세상에 이런 저런 염려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릴 넘어뜨릴 수 없다. 내가 죽으면 끝난다. 일부러 죽는 게 아니라 답이 딱 있기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육신은 죽으면 천국에서 영생이다!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한 신앙을 정리하라. 마음속에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활 되는 것이다!” 선포하라.
2. 지금도 살아계심
▶ 예수님의 부활은 그 때 한 번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그를 누려야 한다.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말씀을 누려야 한다. 그의 말씀도 당연히 살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우리가 말씀을 누리면 말씀은 움직인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말씀이 증거 되면 살아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이 살아난다. 인생이 죽었다고 생각되어지면 답은 말씀을 누리는 것 뿐이다. 그러면 인생이 살아난다. 틀림이 없다. 마른 뼈같은 인생이 큰 군대처럼 살아난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말하면 그건 바보이다. 과정은 눈에 안 보여도 결과가 있다면 처음 시작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게 믿음이고 지혜이다. 이게 똑똑한 것. 이게 명철이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가? 안 보이는데? 죽을 고생하고 평생을 하나님 찾는 것에 투자를 했다? 그것도 우주의 생명체를 찾아서. 제가 보기에는 바보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살아계신다. 증거가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이 영적인 어려움에 빠졌는데 어떻게 하면 100% 답이 될까? 말씀을 누리는 것이다. 말씀을 언약으로 잡고 은혜를 받고, 쓰고 고백하는 것이다. 마음에 심기 위해서! 역사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육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따지면 얼마나 종류가 많은가? 그 어떤 문제에도 하나님의 증거는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염려할 것은 “내가 왜 말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나는 왜 말씀을 누리는데 게을리 할까?” 이런 것 뿐이다.
▶ 인간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이게 근본적 문제이다. 그리고 그 다음 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누릴까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그리스도를 누리는 답이 있다면 걱정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응답을 먼저 받으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먼저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기를 원한다. 근데 사람은 그 과정을 통하지 않고 그냥 응답을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아주 간발의 차이인데 그렇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과 초점이 안 맞는 것. 이것만 고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 중에 역사하실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다시 한 번 이 부분에 대해 놀라운 치유가 있기 바란다. 이걸 발견하고 말씀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다.
▶ 오늘 행하는 성찬은 이 언약,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두가지 길이다.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우릴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의미하는 떡을 나누는 것이다. 우릴 저주에서 건지신 언약되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 이걸 마음에 심고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찬이 무엇이냐? 하면 그의 약속의 피와 대신 죽으심을 누리는 것이다. 그 때 이 언약을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에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