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길 (The Living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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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29 03:47 조회1,541회 댓글0건본문
살 길 (히브리서 10:1-20)
▶ 오늘 말씀은 살 길이다.
히브리서 1: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 본문에서는 새로운 살길이라고 했는데 구약과 비교해서 나온 수식어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영원한 살길”이다. 언약되기 바란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반드시 살아가야 할 길이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 아무리 강한 자가 방해를 해도 반드시 살아가야 할 길이 있어야 한다. 그게 그리스도이고 십자가의 보혈이다. 이 영원한 살 길, 복음에는 권세가 있다. 첫째, 모든 문제가 역전된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이 일어난다. 둘째는 죽어도 산다. 심지어는 죽어야 산다. 이것이 복음이다. 또 한 가지 더,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복음 안에서는 지는 법이 절대 없다. 진다면 그것은 항상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복음 안에 있지 않아서 그렇지 복음 안에 있으면 지는 법이 절대 없다. 심지어 져도 이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는데, 한 가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된다. 이것이 복음의 권세요 자존심이다. 복음을 누리는 사람은 전부 다 그렇다.
▶ 요셉, 모세, 다윗이 다 그랬다. 바울에게는 오히려 병을 더 하나 줬고 고쳐주지 않았다. “네가 약할 때 더 강함이라.”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자랑하였다. 병이 있는데도 시대적인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굉장히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제자들이 몰려 들었다. 병이 있었지만 깊은 기도의 축복과, 삼층천의 축복이 있었다. 바울은 이런 증거를 가진 사람이다. 결정적인 병이 있는데도 그랬다. 바울은 그 깊은 만남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 아직도 칼빈을 능가하는 신학자는 안 나왔다.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을 만큼 많은 병이 있었다. 그래도 세계복음화 했다. 병과 상관없이 더 깊이 신학을 깨달았으며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이것이 복음의 권세이다. 이것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의 살 길” 이라고 말씀하셨다.
1. 살 길
▶ 그래서 오늘 첫 번째 볼 말씀이 살 길 이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 길이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이 살길을 사는 사람은 살게 되어 있다.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을 기초로 하는 이 제사는 언제든지 온전케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계속 해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고도 결국 안 되었다.
히브리서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그렇지 아니하면! 이 말은 만일 그 때 드렸던 피제사 한번으로 영원히 온전케 되는 은혜가 있었다면.. 섬기는 자들, 즉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번 드리는 제사로 죄가 사해지면 다시 죄에 대한 죄의식이 없을 것이라는 뜻. 죄의식이 없으면 어떻게 제사를 드리겠는가? 제사가 끝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3절을 보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히브리서 10: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제사를 드리지만 죄가 완전히 씻겼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제사는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5~10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항상 제사를 드리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안 되었다. 제사를 통해 죄를 완전히 없애는 것에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언제나 안 되었다고 했다. 드릴 때마다 안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히브리서 10:16-18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 이제는 완전히 믿음으로 죄사함 받았기 때문에 제사를 드릴 일이 더 이상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제사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영원한 죄사함이 완성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마태복음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 이제 지성소도 우리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갔던 곳이다. 얼마 전에 상세히 설명을 드렸는데 우리가 왜 이 길이 필요한 것인가? 왜 우리가 이 살 길이 필요한가? 세상 사람들은 절대 이것을 오직 살길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길이 아니고는 너희가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이 길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원죄로 인하여 근본 문제에 갇혀서 우린 빠져나올 답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린 매일 영원히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이다. 오직 이 길만이 살 길이다. 우리는 이 눈이 열려야 한다. 알고만 있는 게 아니라 눈이 열려야 한다. 고백만 하는 게 아니라 이 눈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발견되어야 나에게 힘이 난다. 그래서 이 길만이 정말 살 길이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이해하고 만나고 누릴 수 있다. 이 눈은 영적인 눈이다. 복음을 이해한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눈이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해한 자에게 주시는 영적인 눈! 우린 이 눈이 있어야 한다.
▶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방황한다. 믿는데도 방황한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바로 옆에 두고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찾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전부 싹 망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던 바로와 백성들이 다 망했다. 자기 힘으로 이룬 줄 알고 교만해있던 바벨론도 다 망 했다.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알 것이다. 이 하나님의 살 길을 핍박하던 로마 황제들은? 전부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하여 죽었다.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한 사람이다. 니체 전에는 이런 단어를 구사한 사람이 없었다. 개인 적으로 이야기 하다가 나온 말일 수는 있겠지만 시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 중에 이렇게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 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결국 정신병에 걸려 마지막 죽는 날 마당에서 어둡다며 소리치다 죽었다. 당연한 결과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다.
▶ 우린 잘 안 믿어져서 ‘믿게 해주세요~’ 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아예 믿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예수만이 우리의 유일한 살길이다. 그의 속죄제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그의 피를 믿는 우리의 믿음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간단하지만 이것만이 살길이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인생의 모든 역전이 들어있다. 언약 안에 들어오면 엄청난 역전이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