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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이유 (The Reason of Hard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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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2-05 05:34 조회2,326회 댓글0건
일시 : 2016-12-04 본문 : 욥(Job) 42:1-6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고난의 이유(욥기 42:1-6)

 

‣ 욥이라고 하면 고난의 대명사이다. 하나님의 고난에는 항상 축복이 들어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으면 모든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릴 저주하기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바로 세우려고 하시고 그 다음 축복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 굉장히 힘들다가 그리스도 누리고 응답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인정할 것이다. “이 고난이 없었다면 내가 이걸 어떻게 깨달았을까?” 지금 있는 고난도 같다. 축복을 하고 싶은데 그것을 잠시 방해하는 이유가 있다.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이 고난인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2배로 축복하기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너무 교묘하고 깊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이라 분간이 잘 되지 않는 그 것. 그게 너무나 좋고 잘 하는 것들 안에 쌓여 있어서 보이질 않는 것이다. 누가 욥에게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너무 잘하는데? 오히려 더 많이 하는데? 그래서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큰 고난이 필요했고, 긴 대화와 시간이 필요했다.

 

‣ 결론은 욥의 자신감 속에 숨어있던 교만함이었다. 너무 잘 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진 것. 악한 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못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와서 너에게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계속 말했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이런 저주를 주시겠는가? 이런 일이 있다면 너에게 이유가 있지 하나님에게 있겠는가? 말해도 욥은 인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욥이 결국 도달한 곳이 있다.

 

욥 40:8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 욥이 여기까지 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이 공의하지 않다는 뜻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욥의 전곡을 찔렀다. 그는 이런 마음이 자기 속에 숨어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 그가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이 불의해지는 상황이 생길 정도로 자신의 의로움에 자신이 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 마음을 보여주시고 문을 열어주시는 작업을 시작하셨다.

 

욥 38:4-7 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 아는 것 있으면 말 해보라는 것이다. 양을 결정하고 선을 긋는 이런 것들을 누가 했는지 아냐는 것이다.

 

욥 41:1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 그 대단한 욥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쫙~ 나온다.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잘 못 해서 욥의 잘못을 언급하는 게 아니다. 자긴 정말 잘 했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못 된 것이다. 왜? 자기를 보는 눈이 안 열려서. 그런데 하나님이 그 눈을 열어줘서 자기가 누군지 비로소 알게 하셨다. 자기가 누군지 알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된다.

 

욥기 42:1-6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 이제 무언가 알게 된 것이다. 욥은 큰 자이기 때문에 큰 축복 큰 전도가 일어나고 2배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게 욥의 요약이다. 중대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1. 고난에는 이유가 있다.

‣ 여기에는 반드시 축복이 준비되어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된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렇다면 이 일을 누가 막을 것인가? 절대 속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저주 받는 법이 없다. 저주와 같은 고통이 있다면 내 안에 무엇을 고쳐야 할 것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고칠까요?” 이렇게 기도하면 될 것이다. 나는 아주 잘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왜 그러실까?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욥은 아주 잘 하고,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은 절대 발견 못하는 더 깊고 교묘하게 숨어있는 것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뚜껑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게 자부심인줄 알았는데 밑에 보니 교만인 것. 그리고 욥 안에 있는 나중심이었다. 밖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놔두면 잘 사는데 하나님은 그것 마져 깨서 욥을 축복하고 싶었던 것. 이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기에 욥을 세밀히 간섭하셨다.

 

2. 모든 고난은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 사단이나 환경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 사단을 불렀다. 하나님이 안 부르면 사단은 그런 자리에 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이다. 우리는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

3. 하나님은 처음부터 욥을 지목했다.

‣ 하나님은 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축복하실 것을 이미 마음에 정하고 시작하셨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도 항상 이런 원칙을 따라 일어난다. 그래서 세상에 모든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리고 절대 우연이란 없다. 하나님이 정하셨고 시작하셨다. 잊지 말기를 바란다.

 

4. 우리의 고난에 대해 사단은 상관이 없다.

‣ 모든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분만큼만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욥이 모든 소유에는 손을 댈 수 있으나 몸에는 대지 못하게 하였다. 두 번째는 몸에는 손을 대도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고 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다. 결국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고난을 사단과 연결하면 안 된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사단을 이길 수 있고 전쟁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문제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를 사단이 꾸몄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단이 꾸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허락하신 것이다.

 

‣ 때로는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있다. 아무리 사단을 결박하고 그리스도 잡아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 이 때를 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답이 욥기이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주시고 우릴 압박하는 것이다. 고치라고. 축복을 하려는데 이게 걸린다. 그러나 고치면 두 배로 축복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인생이 되어진다. 욥은 대단한 신앙가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욥이 이 모든 것을 겪고 난 뒤 눈을 떴다. 처음 작정하신대로 두 배의 축복도 주셨다. 이 큰 자를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동방 전체에 퍼뜨리며 욥을 통해 전도하신 것이다. 욥은 고난과 사건을 통해 이 전도에 쓰임을 받았다.

 

‣ 그는 덤으로 크게 눈을 뜨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영적 축복과 함께 두 배의 육신 축복을 받았다. 오늘 욥의 영적 상태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적용해보기 바란다. 교만이 깨지지 않고는 큰 응답은 없다. 이것이 깨지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간다. 그리고 자꾸 맴돌게 될 뿐이다. 은혜 받고 때로 응답도 받는다. 근데 웬일인지 진도가 안 나간다. 자꾸 맴돈다. 욥은 틀린 사람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눈에 두배의 축복을 위하여 고쳐야 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 우리들 중에도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살아 있으면 안 된다. 내가 교만하려고 교만한게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주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줄 믿는다. 조용히 마음에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를 발견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릴 두 배로 축복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