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방법 (The Way God love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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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2-12 05:14 조회2,430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방법 (요한복음 3장 16-21절)
▶ 담임목사님은 세계 선교대회로 참석 중이다. 교회 리더가 세계 선교의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란다. 제가 2년 전 몽족에 청소년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복음을 나누었을 때 150여명의 학생이 영접하는 일이 벌어졌다. 특강 후에 Q&A시간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질문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서 우리가 죄를 짓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신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기도 한다.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가? 한번 곰곰이 생각 해 보기 바란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을 사랑하고 있겠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다.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또는 재산이나 친구들을 사랑하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방법 - 그리스도
▶ 왜 우린 이런 것들을 사랑할까? 대부분 이것들은 나의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배부르게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 있다. 고기, 회... 사랑하게 된다. 야채? 싫어한다. 예쁜 여성을 좋아하거나 근육질의 남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을 보면 눈길이 가지 않는다. 사실 우리들의 사랑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처럼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기대를 만족 시켜주어야만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사랑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헬라어는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방법’이다. 곧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주셨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데 먼저 사랑하시고 아들을 주셨다. 사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다. 하나님 대신 왕 노릇 했던 우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릴 사랑하시고 그리스도를 주셨다. 왜?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오해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릴 넘어뜨리고 싶어서 선악과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우릴 정죄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게 아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자가 있는가? 지금도 절대 해결 할 수 없는 3가지 하나님 떠남, 죄, 사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간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오셔서 완벽하게 해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잘 살 수 있었다. 모든 걸 준비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사단이 그 안에서 역사할 것임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놓으신 것이다. 에덴 동산 안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곳이 선악과 앞이었다. 그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을 언약으로 가지며 살라고 동산 중앙에 놓으신 것이다.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 때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에게 “죽지 말라고! 길 잃어버리지 말라고!” 동산 중앙에 놓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났다. 우리 같으면 다신 보지 않을텐데 그런 우리를 위해 또 다른 길을 여셨다. 내가 아무리 죄를 짓고 하나님과 원수처럼 살았을지라도 내가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만 하면 우릴 구원 하시겠다는 것이다. 다른 조건 없다! “죄 값은 내가 치르겠다. 너는 믿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오라” 그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언제든지 만나주시겠다는 것,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것! 근데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사단으로부터 우릴 보호, 인도하시겠다는 것, 이미 나에게 와 있는 사랑이다.
▶ 그래서 우린 날마다 이 그리스도가 우리 모든 것의 주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예수님이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너무 좋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말씀을 읽을 때는 의미가 이해가 되니 은혜가 계속 온다. 그런데 이상하게 삶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전에 그리스도 없이 좋았던 것들이 지금도 좋다? 찬송가 중에 예전에 좋던 것 이전엔 값없다. 이런 가사가 있는데 예전에 좋던 것이 지금은 더 좋다면? 속으면 안 된다. 내가 믿고 인정했다고 해서 내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중심을 바꾸겠다는 최소한의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 말씀이 맞으면 내가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최소한의 결단, 바로 영접이다.
▶ 인간의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 것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랑의 원리가 나 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 중심적으로는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 사랑할 수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나 중심적 사랑이다. 이것을 종교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고백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과 방향과 목적을 하나님 것으로 바꾸겠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이 고백 없이도 그리스도 영접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왜? 나는 교회 안에 있고 전도 하는 자리에 가 있으니까. 여러분의 주인과 방향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내 자신을 돌아볼 때는 정말 냉철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필요 없이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 적당히 섞어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없다. 오늘 이것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십니다. 날마다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선포하라! 그러면 오늘 말씀의 약속처럼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 응답이 죽어서 오는 응답이 아니라 오늘의 응답이 될 줄 믿는다.
2. 그리스도를 의지해도 된다.
▶ 보통은 그리스도를 의지하십시오! 하지만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의지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든 다 알고는 있다. 그러나 안 되는게 문제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알고 동의할 수 있지만 꼭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안다고 해서 의지할 수 있는가?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이 말은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 절대 계획에 내 삶을 드리지 못한다면? 그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하고 있다. 창세기 3:5에 사단이 뱀 속에 들어와서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될 줄 하나님이 아신다”고 했다. 그 전에도 눈이 어둡진 않았을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럼 무엇인가? 눈이 밝아진 다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선악과이다. 정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들이 벌거벗음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옷이 없었겠다. 말 그대로 야생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약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짐승도 있고 가시도 있고 나무떨기도 있는... 그러나 하나님이 보라고 하는 것만 보고 살았을 땐 그런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사야 43:19-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이게 하나님의 자신감이다. “너 내 앞에 있으면 나를 찬송하게 만들거야. 그럴 수밖에 없도록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 벌거벗었으나 걱정하지 말라. 내가 사막에 강을 낼 것이라!” 그런데 눈이 밝아지면서 내가 약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돈이 없으면 사고 싶은 것을 못 사서 기분이 좀 안 좋을 수는 있어도 걱정하진 않는다. 부모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이들 눈에 부모는 돈이 있는 존재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했던 눈이 약한 나를 향하게 되니까 걱정 근심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니 때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이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못 된다. 인간이 어떻게 사단에게 속았는지 알겠는가? 너의 눈이 밝아지면!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네가 이 과일을 먹으면! 더 정확하게는 너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너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고 선악을 알게 될 것이야. 즉, 바로 네가 네 인생의 기준이 될거야! 하는 것. 후에 인간은 행복해졌나? 모든 문제가 왔다. 여전히 열심히 하지만 항상 갈급하다. 하나님께서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님이 없으니 공허한 것인데 다른 걸로 채우려고 하니까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어렵고 고통스럽다. 나에게 꿈이 있으니 좋다? 그때는 좋겠지만 지금은 안 좋지 않나? 그 하나님이 우릴 심판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 심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요한복음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 말은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내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어둠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어둠으로 나아가는 그 길이 내 인생에 길이기 때문이다. 빛이 되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먼저 내 주인이 바뀌어야한다. 그런데 내 인생의 주인을 바꾸기엔 세상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