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원 (God’s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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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01 10:36 조회256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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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소원 욥42:7-11
1. 하나님의 소원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막을 수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반드시 되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상의 모든 축복이 있고 세상의 모든 역사도 그 안에 있습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원에는 세상을 정복하는 권세가 있고 하나님은 이것을 막는 자를 제거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아주 냉정하게 선을 긋고 너무나 훌륭한 사람이었는데도 안타깝게도 말년이 좋지 않은 그런 경우도 성경에 있습니다.
3) 이것은 절대 계획입니다. 따라 가는 자는 앞 뒤 돌아볼 것 없이 무조건 따라 가면 되고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응답으로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정복자가 되고 작품 인생도 됩니다.
4) 이것을 행하는 자는 사단을 꺾고 모든 문을 열며 인생이 중단되는 일이 없게 됩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상관 없이 가는 순례자의 정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가슴이 통하므로 이 축복과 권세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흐름
1)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시는 일에 흐름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뜻이 아주 일정하시기 때문에 같은 일을 시대에 따라 반복적으로 하시고 시대마다 초점도 다르기 때문에 또한 흐름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변하기 때문에 자연히 변화된 흔적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흐름을 형성합니다
2) 그런데 이 하나님의 흐름을 형성해 가시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특징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첫째는 항상 먼저 당신의 종을 선택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주십니다.
3) 그리고 그 시대에는 세우신 그 종을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 종을 따르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 역사의 중심에서 제외하십니다. 때로는 불러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종을 통하여 하시길 원하시는 일은 항상 그대로 되었고 이 흐름을 탄 모든 사람은 축복을 받고 정복하는 증거를 보았습니다.
4) 몇 가지 성경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시대적인 복음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형들과 보디발과 그의 아내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따르지 않았고 요셉과 같은 증거도 보지 못했습니다.
5) 모세도 꼭 같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먼저 말씀을 받았고 그것은 평생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해했지만 결국은 다 이루어졌고 광야와 애굽의 군대와 홍해등 어떤 상황도 그의 말씀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6) 미리암은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을 가지고 모세를 대적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문둥병을 주시므로 이 문제를 정리하셨습니다. 모세가 잘 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미리암의 말이 맞는 말일 수 있지만 미리암 때문에 모세의 리더쉽이 깨어지면 안됩니다. 모세의 첫 번 째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인데 모세의 권위가 깨어져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흠집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암의 논리에 손을 들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7) 다윗의 경우에는 더 극명합니다. 다윗도 한 시대의 선택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골리앗을 이기게 해 주셨고 시편에는 예언의 말씀도 있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의 권리를 이용하여 남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그 남편 우리야를 묘략으로 죽여 버렸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범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밧세바의 조부 아히도벨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8) 그러나 결과는 아히도벨은 자살하고 압살롬은 그의 자랑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서 죽었습니다. 시므이나 나발 같은 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사울 왕을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으로서 다윗을 부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유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대적한 것입니다.
9) 그리고 바울 주위에도 안타까운 일은 있었습니다. 바나바 같은 훌륭한 제자가 그렇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재산을 초대교회에 내어 놓은 첫 번째 사람이었고 안디옥 교회에 본부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은 대표적인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사도 바울을 데리고 와서 일년 동안 큰 무리를 함께 가르친 사람이었습니다
10) 그런데 이런 제자가 마가의 일로 인하여 사도 바울과 헤어졌습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의 일년 사역과 1차 전도 여행을 함께 하면서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를 그의 메시지를 통하여 알았을 것입니다.
11) 바울과 바나바는 부르심이 다르기 때문에 분명히 증거가 다르고 영적인 이해와 누림과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지식에 있어서도 바나바는 바울을 선생으로 모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 아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12) 만일 그가 바울 아래에 들어가서 2인자 같은 역할을 했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크고 의미 있는 세계복음화를 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이 마가는 불렀으나 바나바는 부른 기록이 없습니다. 그가 만일 영적으로 변화된 것이 감지되었다면 바울이 바나바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3) 물론 바나바도 전도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별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가 사도행전에 그의 현장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 사도행전에는 빠져도 그의 사역에 중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면 다른 기록을 통해서도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 우선 그의 제자들이 현장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교회를 세우므로 자연히 교회사에 남았을 것이지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14) 하나님 나라의 중심 흐름에서 제외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처음에 그토록 훌륭했던 바나바가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인 바울과 함께 했어야 했습니다.
15)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갈렙입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버금가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지명하였을 때 완전히 그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방인 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근본은 그의 신앙이었을 것이고 다음은 하나님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순종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16) 우리는 하나님의 흐름의 중심에 있는 자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과 일 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런 선택을 받은 이 시대의 사람일까.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그 사람이…..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여기에 답이 있어야 합니다.
17) 그렇지 않으면 그냥 따라 가게 되고 그러면 언약이 없다는 말인데 잘 못하면 시간만 낭비하기 쉽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이 성경적이면 되고 전도가 성경적이면 됩니다.
18)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과 전도는 시대적입니다. 이렇게 성경적으로 현장적으로 영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저가 알기에는 교회사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메시지를 주시기 때문에 절대 비교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 그러면 같은 시대인 이 시대에는 복음과 전도를 이렇게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이며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일단 내가 보기에 한국에는 없습니다. 미국에는 있습니까. 아니면 중국에 있습니까. 중동에 있습니까. 남미에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내 생각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이 흐름을 전심으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흐름이 분명하다면 생명을 걸고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언약이고 전도는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잘 정리하시고 정말로 답이 나므로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눈이 열리면 누구나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