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권 (Absolute Sovereig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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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30 08:05 조회1,968회 댓글0건본문
절대 주권(열왕기상 22:29-40)
‣ 오늘 본문은 아합왕이 결국 전쟁에 나가 죽게 되는 장면이다. 화살이 갑옷의 솔기를 맞추었다. 갑옷을 연결하는 부분을 솔기라고 한다. 하필 거기에 화살이 맞은 것이다. 굉장한 메시지가 된다.
‣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우연한 일인 것 같지만 우연한 일이 아니다. 강단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을 설명하는 공부인가? 아니면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말하는 인생의 교훈인가? 이 강단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우린 평생 살면서 응답을 받아야 하고 응답 받기를 원한다. 근데 응답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도” 아닌가? 기도는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듣는 강단은 기도 응답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거기서 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찾기 원하는 사람은 강단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인생의 답은 “그리스도”와 “세계 복음화”이다. 이것은 큰 방향이고 근본 방향이다. 그 안에서 오늘을 어떻게 할까? 이 주간을 어떻게 할까? 구체적인 방향이 강단 말씀이다. 그래서 강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받는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인생의 승패가 이 말씀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예를 들어 나는 예수 믿었고 구원 받았다. 근데 하나님이 매주 하시는 말씀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면 내 생각대로 산다. 구원 받긴 했지만 하나님과는 따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일천번제를 하고 있는데 강단 말씀을 따라서 하고 있는 것이다. 언약 기도를 통해 우리가 기도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어가게 되었고 정의도 많이 바뀌었다. 이 말씀을 구약시대에는 선지자,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을 통해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이제 사역을 하고 계신 것이다.
‣ 강단이 어떻게 변화되어지고 우리 교회가 어떻게 영향 받고 변화되고 있는지 한번 쭉~ 보기 바란다. 굉장한 답이 나올 것이다. 목사의 설교를 연구할 필요는 없지만 목사의 설교가 어떻게 연결되어왔는지를 보면 된다.
‣첫째로 나도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공부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현장과 말씀이 관계가 없다. 그런데 내게 오는 말씀을 잡고 내 생각을 바꾸며 따라가려고 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사람의 현장에 말씀이 그대로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 공부로 끝나서는 공부일 뿐이다. 그것을 잡고 현장으로 가면 이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한 주 듣고 한 장 넘기고 하지 말고 기록하며 역사를 보아라. 한 주 한 주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록 전체를 1년 2년 3년 보다보면 자동으로 센스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큰 눈으로 살아야 한다.
‣두 번째 볼 것은 강단의 권위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이 강단 말씀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던 시대와 같은 권위이다. 사도들이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아서 현장에 있는 성도들에게 전달했는데 그 때 현장에 일어났던 일과 지금이 같은 권위이다. 이유는 설교를 잘하고 성경과 맞기 때문에 그런가? 이유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 마태복음 10장에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하나님도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 예수님 이름으로 모였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나 그 때나 동일한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믿음에 맞는 말씀을 주실 것이다.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줄 것이다. 우리는 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강단 말씀은 너무 중요하다. 틀린 것도 그냥 던져버리면 안 된다. 내 생각과 다르다? 그래서 내가 마음에서 정리해버린다면 목사의 메시지를 정리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해버린 것이다. 하나님 왜 이렇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질문해야 한다.
‣ 사단은 항상 숨어있다. 사단이 바보인가? 자기 정체를 쉽게 드러낼 리가 없다. 많은 것을 드러내지만 끝가지 남아서 숨어있다. 우리는 강단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강단에서 틀린 소리를 계속 한다면 하나님이 목사에게 매를 좀 주실 것이다. 정신 차리라고. 근데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성도에게는 축복하실 것이다. 내가 볼 때 완전히 틀렸는데도 네가 나를 믿냐 이말이다.
‣ 응답은 나의 사람에 있다. 내 생각과 완전히 다른 말을 들었다? 그것은 나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이다. 강단은 우리기도 응답에 아주 중요하다. 기도보다도 말씀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면 기도의 바탕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이 기도의 뿌리이다. 말씀이 기도의 방향이다. 말씀으로 먼저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 이번 주부터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잘 생각하라. 그래야 우리 인생이 크게 된다. 큰 인생 멀리 보는 인생. 기도해서 응답받고 또 문제 오면 기도해서 응답받고 이런 게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이런 것과 관계없이 크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이게 마태복음 6:33이다. 우리는 전부 이런 크고 여유 있고 권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누리는 자에게 이 축복을 주실 줄 믿는다.
1. 절대 주권
‣ 하나님은 아합왕을 죽이기로 정했다. 방법도 정했다. 그래서 아합왕은 완전히 속아 확신을 가지고 전쟁터에 갔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하실 것이다. 절대 주권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축복하실지 정해놓으신 것이다. 이 말은 우리를 하나님이 기계 취급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영원하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서 우린 사랑하고 좋아할만하다.
‣ 어려움이 계속 오는 이유는 내가 무언가 고쳐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린 살길이 있다. 죄를 지어도 살 길이 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우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의 절대 주권은 아무도 손 못 댄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는 것이다. 어떤 우연도 아합왕과 같은 사건은 못 만든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언약 잡고 일어나서 역전시킬 수 있다. 그게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늘 감사해야 한다.
2. 결론
‣ 아합왕은 우리에게 앞 뒤로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다. 이 쪽면이든 저 쪽면이든 중요한 표본이 되었다. 예를 들면 메시지가 우상숭배 하면 죽는다는 표본이 되었다. 너는 우상숭배 하지마, 죽어! 변장해도 안 되! 절대 인본주의 쓰지 마! 우연한 일에도 생명이 걸릴 수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왕인데 그 자리를 못 빠져나와서 죽었다는게 말이 안 되는것처럼 보이지만 말이 된다. 네 인생은 이렇게 안 되도록 아합처럼 하지마! 메시지이다.
‣ 이런 아합왕 이었지만 반대인 경우도 많다. 회개 했는데 하나님이 싹 바꾸어 버렸다. 그 다음 아들도 회개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 계속 저주는 떠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보고도 너희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라는 말이다. 목사도 똑같이 한다.
‣ 마지막 아합왕을 통해 주신 메시지가 있다. 이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지속하였다가 우연히 일어난 간단한 일에 죽었다. 은혜 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우상을 끊어라.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하란 말이다. 쉽지는 않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었다. 누리면 이것이 되어지는 것이다.
‣ 오늘까지 힘들던 것도 내가 바뀌면 너무 쉬워진다. 이 모든 것을 돌아보고 너는 너의 길을 정해라. 아합의 모든 것을 조용히 생각해보고 너는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라. 이 번주 안에 전에 없던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말씀이 우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은혜가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