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귀한 지식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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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28 04:38 조회1,810회 댓글0건본문
빌립보서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 “가장 고상하다” 즉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지식을 말한다. 사람으로서는 사실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듯이 지식 위에 지식이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우리를 오늘도 묶여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킬 줄 믿는다. 언약으로 잡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언약 잡고 행동으로 옮기면 사단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우리가 언약만 잡고 있어도 사단은 벌벌 떨고 있다.
1. 가장 고상한 지식
‣ 세상에는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지식이 많고 때로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려워 보이는 시식도 있다. 아주 깊은 곳을 설명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다 거짓말이다. 왜? 그것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거짓말인 것. 하나님을 알면 그런 지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수준 낮은 것이다. 인간의 현실이 뭔가? 죽으면 지옥가야 하는 문제와, 지금 있는 저주를 해결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철학이 그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 아무리 오묘한 깊은 불교의 세계를 말하는 스님이 있다고 한들, 그 소리에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묘하다 뭐하다 하지만 결국은 귀신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아주 오묘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사실상 이 사상은 ‘현실은 현실’이란 말이다. 요가 하는 사람들도 무언가 깊이 들어가곤 하는데 물론 무슨 세계가 있기는 하겠다. 사단도 자기 세계가 있으니까. 그러나 결국 귀신 아닌가! 그들 또한 깊은 세계를 통해 천국에 갈수만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따라가야 하겠지만 그건 말도 안 된다.
‣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 이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복음 전해보면 알 수 있다. 알아들으면 진짜고 못 받아들이면 가짜이다. 그럼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가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절대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야기 하면 사실 우리에게 다른 것이 필요 없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그게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는데 복음을 알고 나니 속았던 것을 깨다았고 이제 오히려 그것을 해로 여긴다고 했다. 세상 지식은 우리가 그냥 이용할 도구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를 줄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놀라운 해결책을 줄 수 있다. 모든 재앙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이 그리스도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지식이고 그 외에 것은 전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혹시 그리스도보다 더 높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다 버리시기 바란다.
‣ 세상지식은 대충한다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식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지식은 세상 모든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뭘 하려면 지식이 필요하니 배움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는 그것을 뛰어넘는 능력이다. “그들은 지식이 많고 우리는 응답이 많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끝!! 아닌가? 뭐하려고 고민하고 있는가? 간단히 하고 넘겨 버리고 끝! 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1번, 공부 2번이다! 기본은 알고 있어야 하니까.
‣ 바울이 배설물이라고 고백했다. 오히려 내지식이 해가 된다, 정말 거추장스럽고 제발 버려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들어와있는 그것들 때문에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복음 알고 난 후 그것들을 정말로 버리고 싶어 했다. 물론 그리스도 누리면 그것들은 새롭게 이용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위에 있을만한 지식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가장 고상한 지식! 최고의 것을 뛰어넘는 그 위의 무엇! 이란 뜻으로 표현했다. 이 말은 결코 세상에서 최고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비교할 만한 것 조차 없다. 그래서 “내가 말 할 수 없는 그곳을 보고 왔다”고 했다. 지식위에 지식 즉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지식이라는 것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소망은 이 지식 안에 있다. 그리스도 없으면 인간은 아~ 무 소망이 없다.
2. 이 지식으로 끝내라.
‣ 자꾸 무엇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지식으로 이미 끝이 났다! 무한정해야 무엇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은 우리의 종교성에서 나왔다 .이 종교성으로 인해 우린 자꾸 무엇을 하려는 것이다. 언약을 잡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 생각 한다. 이것이 우리 체질이다. 계속 뭘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은 불신앙에서 온 것이다. 창세기 3장 문제, 사단이 역사해서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계속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누리는 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종교는 안 그렇다. 계속 무엇을 하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불교 아닌가? 불교는 답을 처음부터 주지 않는다. 줄 수도 없고 끝까지 가봐야 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해탈이야기가 나오는 것. 그 중간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해탈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채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 뭔가를 계속 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근데 복음은 다르다. 답을 처음부터 준 것이다. 믿는 순간 하나님 자녀 아닌가? 그 순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고 모든 저주에서 일단 해방이다! 그 때부터 기도 응답 된다고 약속도 확실히 보장되었다.
‣ 천주교도 답이 없다. 죽어봐야 안다는 게 천주교다. 그러니 죽는 순간이 너무 불안하다. 그리고 평소에 절대 구원의 확신 없다. 그 때 가봐야 안다고 한다. 그런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불손하고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전도할 때 만나보았을 것이다. 고난 오면 힘을 다하여 그 고난을 견딘다. 절대 말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견딘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끝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순간 옮겨버렸다! 그리고 절대 되돌아가지 않는다!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것으로 끝이다. 이게 복음이다.
‣ 이 그리스도로 끝내라! 일단 영적으로 끝내야 한다. 다른 것 할 필요 없이 언약잡고 누리면 하나님이 하신다. 끝!! 이걸 사실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겠는가? 결론은 누리면 된다. 근데 누림이 잘 안 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먼저 말씀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정리하라. 그것을 딱 정리하고 그리스도가 답인 것을 새로 한번 정리하라. 마음에 불신앙이 있거나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부식되어 없어질 때까지 이것이 정말 답 맞냐고 질문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간표를 주신다. 발견 되었다면 그 때부터는 눈 돌리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그것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더 많이 하려고 하지도 말고 되어지는만큼 하면서 그리스도 누리면 된다. 그렇게 하다 한 칸 올라서면 거기서 그리스도 누리고 또 올라서면 또 그 자리에서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 복음 정리하고 답인가 확인하고 누리는 것을 시작하라.
‣ 우리는 보통 그리스도로 끝내라고 하면 요 19:30(내가 다 이루었다)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끝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옛날에 우리가 했던 무작정 “믿습니다~~!”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복음적 방법이 아니다. 그리스도 누리는 게 복음의 방법이고 기다리는 것 또한 복음의 방법이다. 내가 믿어서 끝내려는 게 아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정리하기 바란다. 그러면 점차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날 끝이 온다. 그렇게 해서 이 모든 인생의 여정을 끝내는 것이다.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아있다 해도 끝이다. 무슨 일이 온다 해도 나와는 더 이상 아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 이렇게 점점 영적으로 답이 나고 눈 열리는 것이다. 이 이상은 필요 없다. 왜? 답났기 때문에. 이제 남아 있는 여정이 있다. 지금까지는 계속 움직여 가는 여정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정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인생을 따라 움직이는 여정이 더 이상 아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에 멈춰 서서 영적인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 우리 목표는 일단 24시다. 늘 승리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 때 우리에게 완벽한 승리가 온다. 이 모든 것이 최고의 지식,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참 감사하다. 그리스도 언약 잡은 자는 하나님이 여기로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이 주간 이런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지식이다! 그리스도가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