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나는 부활(The Resurrection that I Re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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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01 04:40 조회1,923회 댓글0건본문
내가 살아나는 부활(고전 15:12~26)
‣ 우리는 창세기 3장 문제 때문에 진짜 속은거 많이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복음 안에 잘 되어지는 사람들은 소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언약이 되면 누구든지 다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기적이고 안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오늘부터 속지 말라.
‣ 성도들은 문제를 너무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건 문제가 응답을 주시기 위한 축복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시각을 뒤집는 데 그걸 보고 역전이라고 한다. 그러니 주변에 있는 사람은 덩달아 살아난다. 내가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먹여 살릴 것인가? 그냥 말씀 전하면 된다. 말씀을 전달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게 그리스도이다. 이것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만 누리면 되고 이것만 전달하면 내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은 응답이다. 그것도 그냥 한 번씩 받는 응답이 아니라 지속적인 응답이다. 어떻게 하면 이럴 수 있을까? 정말 간단하다.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게 시간 안 든다. 내가 하는 것 하면서 하나님 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 간혹 보면 참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될까? 싶은 사람이 있다. 정말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데 왜 저럴까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체적으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 경험으로는 이것 고치면 일단 합격이다. 첫째는 예수는 알지만 복음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복음 증거 열심히 하고 헌신하는데 말하는 것 보면 약간 다르거나 부족하다.
‣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이유가 동기이다. 전도도 자기를 위하여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무엇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 그럼 참 귀한데 처음에 응답하시다가 하나님이 점 조절을 하신다. 왜냐면 그건 틀렸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깨달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며 잡고 있는 것이다.
‣ 세 번째는 교만이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려는 무엇이 있다. 전적으로 자기를 죽이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16:24,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너의 십자가를 지고 너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을 따르긴 따르는데 내가 살아있으면 안 된다. 참 따르는 것은 귀한데 결국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문을 안 열어주신다. 왜냐면 역시 마찬가지로 사단에게 당하기 때문이다.
‣ 네 번째는 자기가 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4:19,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렇게 따라가야 하는데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해야 속이 시원하다. 좀 심하면 하나님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이런 경우도 맞지 않다.
‣ 이런 모든 것을 정리하면 아!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구나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 더 남았다. 생명을 걸고 진짜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쏟는다면 엘리사처럼 될 것이다. 역전의 기적이 지속 될 것이다. 응답이 계속적으로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이다. 엘리사도 모세도 사무엘도 다윗도 다 그랬다. 이 사람들 전부 자신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자기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되어지는 인생은 어렵지 않다. 신자는 죽을 힘을 다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가 저주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 아닌가?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저주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대속의 신앙이다. 지옥 가는 부분만이 아니라 육신적 삶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신자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나는 죽어라 힘써서 일하는 것이다. 이 모든 치유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내 마음이 하나씩 하나씩 바뀌고 마음과생각과 행동이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인생도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힘 쓰고 악을 쓰는게 아니다. 되어지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러면서 내 눈을 하나님의 소원에 딱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계속되고 지속된다.
‣ 성경의 인물들 중에 아주 힘있고 특별히 튀는 사람 많이 없다. 조용했는데 굉장히 간절한 사람이었다. 진짜 언약을 가지고 거기에 생명을 걸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진짜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하나님과 소통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응답 받는다. 그래서 인생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으로 산다. 천국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간다. 이게 인생의 답이다.
1. 내가 살아나는 부활
‣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게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부활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약속이다. 끝이요 완성이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고 약속이 없다면 우리가 이런 모든 걸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믿을 이유도 전도 할 이유도 없어진다. 고전 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다.
‣ 그리고 너는 이것을 믿어라. 요 10:28, 아주 귀중한 말씀이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그리고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안되는 것이다. 아무도 예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 한번 구원은 영원히 끝인 것이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보장이다.
‣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다. 참 중요하다. 이것을 말씀하기 위해 예수님이 첫 열매가 되었다. 이걸 가르치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오셨다.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르치러 왔다. 그에게만 길이 있다. 그의 죽으심과 피흘리심 안에만 죄사함이 있다. 거기서만 저주에서 해방된다. 오직 그의 이름에만 기도 응답의 약속이 있다. 오직 그 이름에만 사단의 권세를 꺾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전부 구원 받는다. 하는 것이다.
‣ 우리가 부활이란 단어를 가지고 또 하나 생각을 해야 할 것이 인생 부활이다. 천국에서 영생하는 거 너무 중요하다. 그것 없으면 이 땅에 사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역전의 인생, 부활은 약속 되어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인생의 한 부분에도 부활을 주시기 원한다. 우리 인생의 죽어가는 하나 부분을 살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그것으로 증인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땅끝까지 역전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 역전되고 부활되기 원하는 것은 뜻이다.
‣ 우린 이렇게 해서 두 가지를 다 누릴 사람이다. 부활할 사람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이것을 미국에 증거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여기 왔다. 그냥 살려고 왔다면 속는 것이다. 미국 문화에 당한다. 우린 하나님의 영적 이유 때문에 흩어진 자이다. 그리고 남은 자 아닌가? 이게 우리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놓치면 안 된다. 그러면 잘 못하면 굉장히 비참해질 수있다. 그러나 정체성 살아있으면 어느 상황에서도 비참하지 않다.
‣ 그리스도 안에. 멀리 보고 살아야 한다. 바르게 알고 살아야 한다. 진짜 언야 잡아야 하고 매일 그리스도 누려야 한다. 나는 여기서 비참하게 살 자가 아니야. 정체성 회복해야 한다. 늘 기도하고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렘넌트, 남미 끝까지 전 세계!
‣ 네가 무슨 세계 복음화냐 정신 차려라. 사람들은 그러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더 좋아하신다. 네가 미국에서 최고다. 하신다. 아무도 너처럼 기도하는 사람 없어. 헛말이라도 이런 말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짜 잘하네 계속 해라~ 하실 것이다. 그러다 시간표 되어서 기적일어나면 완전히 역전 되는 것이다. 이런 부활이 우리에게 있을 줄 믿는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줄 믿는다. 이걸 위하여 우리에게 부활이란 단어를 주신 줄 믿는다. 역전 일어날 것이다.